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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 심리학

[발달심리학 3] 인간발달의 역사

by 도시운 2024. 7. 29.

현대 서양 사회는 '아동 중심적'사회라고 묘사되기도 한다. 즉, 사람들은 종종 출생을 축복받은 사건으로 생각하고 자녀들을 교육하기 위해 많은 돈을 쓰며 법적으로 자신을 책임질 수 있는 현명함과 기술을 획득해야 하는 나이인 14세에서 21세까지 어른으로서의 완전한 책임에 대한 부담을 아동들에게 면제해 준다. 그러나 아동기와 청소년기가 오늘날 생각하는 것처럼 항상 매우 특별하고 민감한 시기로 간주하지는 않았었다. 발달학자들이 아동에 대한 연구를 어떻게 생각하고 접근해 왔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동기에 대한 개념이 시간순으로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아동 발달심리학

아동 발달심리학

1. 전근대시대의 아동기

 초기 역사시대에 아동들은 거의 권리를 갖고 있지 않았고 어른들은 아동들의 삶을 가치 있게 여기지 않았다. 예를 들어 고고학 연구에서 고대 카르타고인들은 종종 종교적 희생으로 어린아이들을 죽였다. 튼튼한 건축물을 짓기 위해 건물 벽에 아이들을 넣곤 했다고 밝혔다. 서기 4세기까지 로마의 부모들은 법적으로 기형인 영아나 사생아인 자녀 혹은 원하지 않은 영아 자녀들을 죽일 권리를 갖고 있었다. (물론 현시대에도 몇 나라들은 이런 기형아에 대한 살해를 암묵적으로 묵인하고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영아살해가 법적으로 금지된 후에는 원하지 않은 아기들은 황무지에 죽게 버려지거나 또는 노예나 성적 착취의 대상으로 아동기 중기까지 팔렸다.

 초기의 모든 사회에서 카르타고, 로마, 스파르타의 사람들처럼 자녀들을 거칠 게 다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예수의 탄생 이후로 수 세기 동안 아동들은 아무 권리가 없는 가족의 '소유물'로 간주하였다. 부모가 맞는다고 생각한 대로 착취할 수 있는 존대로 간주한 것이다. 사시 상 기독교 유럽에서 서기 12세기까지 영아살해는 살인으로 보는 세속적인 법률제정이 존재하지 않았다. 현재 중세 시대 동안의 아동기란 어떤 것이었는가에 대한 논쟁이 분분하다. 역사가 Philippe Aries는 중세 유럽의 문서와 그림을 분석하여 우리가 아는 한 1600년대 이전에는 유럽 사회에 아동기 개념이 없었다고 결론지었다. 중세 시대 아동들은 오늘날 아이들처럼 응석받이가 아니었다. 그들은 종종 어른 의상을 크기만 작게 만든 옷을 입고 상점이나 마당에 있는 어른 옆에서 어른들과 함께 파티에 참석하고 심지어 술도 마시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리고 잘못에 대한 형사상 처벌로부터 매우 어린 아동들을 면제시키는 것을 제외하고 중세법은 일반적으로 아동 범죄와 성인 범죄를 구별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세 아동들은 진정으로 어른의 축소판으로 간주 되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중세 역사에 대한 보다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아동기는 인생의 특별한 단계로 여겨졌으며 아동들은 어른의 요구에 더한 어떤 요구를 가지고 있다고 여겨졌다. 중세기 때의 아동 경험은 오늘날의 경험과는 확실히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기준으로 많은 중세 아동이 어른들이 하는 것과 비슷한 경제적 활동을 일상적으로 수행했기 때문이다.

 

2. 현대적 관점의 아동기

17세기와 18세기 동안 아동과 아동 양육에 대한 태도가 변하기 위해 시작했다. 그 시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아동들이 순수하고 무기력해서 거칠고 무모한 어른들의 행동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할 존재라고 했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한 요소로 아이들의 학교로 보내는 것이 있다. 비록 학교 교육의 일차적인 목적은 적절한 도덕적, 종교적 교육을 하는 것이었더라도 읽기, 쓰기와 같은 중요한 보조 기술을 가르쳤던 것이 결국 우리 아이들을 사회에 훌륭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예와 노동자로 만들었다는 점이 이제는 인정됐다. 아이들은 여전히 가족의 소유물로 간주하였었지만 자녀들을 학대하지 못하도록 저지되었으며 자녀를 더 많은 온정과 애정으로 대하라고 촉구되었다.

 2-1. 아동기에 대한 초기 철학적 관점

왜 17, 18세기에 아동에 대한 태도가 급격히 변했을까? 역사적 기록이 이 점에 대해서 분명하지는 않다. 하지만, 영향력 있는 사회 철학자들의 생각이 아동과 아동 양육을 새롭게 보도록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인간 본성에 대한 생생한 추측이 이들 철학자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이슈들을 주의 깊이 생각하도록 했다.

1) 아동들은 본래 선할까? 악할까?

2) 아동들은 선천적 동기와 본능에 의해 끌려 나갈까? 아니면 오히려 그들은 환경의 산물일까?

3) 아동들은 그들의 성격을 형성하는 데 적극적으로 관여하는가 아니면 부모, 교사, 다른 사람들에 의해 형성되는 수동적인 존재일까?

 

 아동과 양육에 관해 매우 다른 관점을 만들어낸 철학적 질문으로 대표적으로 성악설, 성선설이 있다. Thomas Hobbes의 성악설에 의하면 아이들은 사회가 억제해야만 하는 본래 이기적인 자기중심주의자이고 Jean Jacques Rousseau의 성선설에 의하면 아이들은 옳고 그름에 대한 직관력을 갖고 태어나는데 이것을 사회가 타락인가고 했다. 성악설 지지자들은 부모가 매우 자기중심적인 아이들을 적극적으로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성선설의 지지자들은 고결한 미개인으로 보고 아이들은 본래의 긍정적인 성향을 따르도록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고 했다.

 이 외에 또 다른 입장은 영아의 마음은 백지상태라고 믿었던 John Locke에 의해 제시되었다. 영아의 마음은 순수한 백지상태 혹은 비어있는 석판이고 어떤 성향도 갖지 않고 태어났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달리 말하면 아동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고 어떻게 변하는지는 그들의 경험에 따라 달려있다는 것이다. Hobbes와 같이 Locke도 아이들이 좋은 습관을 발달시키고 나쁜 습관을 갖지 않도록 훈육하는 아동 양육을 지지했다.